[중2 역사] 1학기 중간 정리
1. 선사 문화의 전개
a. 인류의 진화
400만 년 전 |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20만 년 전 | 호모 사피엔스
b. 만주와 한반도 지역의 구석기 문화
뗀석기 사용 (구석기)
채집, 사냥, 고기잡이
동굴, 바위 그늘, 막집에 거주
c. 한반도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 유적
평남 상원 검은모루 동굴
경기 연천 전곡리
충남 공주 석장리
d. 여러가지 뗀석기
찌르개
긁개
슴베찌르게
찍개
전곡리 주먹도끼
e. 자연환경의 변화와 신석기 시대
약 1만 2천년전
간석기 사용
토기 제작
농경과 목축의 시작
f. 만주와 한반도 지역의 신석기 문화
움집을 짓고 생활 ⇒ 정착 생활
음식 저장 ⇒ 빗살무늬 토기
가락바퀴, 조개껍데기, 짐승의 뼈 ⇒ 장신구
날씨, 해, 달, 물에 관심 | 이를 숭배
2. 청동기 문화와 고조선의 성장
a. 청동기 문화의 보급
청동기 → 구하기 어려움 ⇒ 지배층의 무기, 장신구, 재사용 도구
비파형 동검, 청동 거울
토기: 민무늬 토기, 농경: 반달 돌칼
b. 청동기 시대의 사회 변화
조, 보리, 콩, 벼 재배
농업 생산력 증가 → 사유 재산 생김 → 계급 발생
권력이 많은 사람 → 족장 | 제사주관 ⇒ 제정일치 사회
족장이 죽은뒤 고인돌
c. 여러 거석 문화
우리나라 | 바둑판식 고인돌
우리나라 | 탁자식 고인돌
중국 | 석붕
프랑스 | 톨멘
칠레 | 모아이 석상
d. 고조선의 성립
청동기 문화 발달 → 만주, 한반도 서북부 고조선 성립 (기원전 2333)
홍익인간의 이념, 단군왕검 고조선 건국 이야기
단군 + 왕검 ⇒ 제정일치
독자적 청동기 문화
곰 부족과의 결합 ⇒ 새로운 토착 세력과의 결합으로 세워짐
e. 고조선의 변천
기원전 4세기 | 철기 문화 바탕 발전
‘왕’ 칭호 사용, 중국의 연과 대립
기원전 2세기 ⇒ 위만 집권, 철기 수용, 영토 확장
한 → 고조선과의 전쟁, 1년 ⇒ 지배층 분열로 수도 왕검성 함락 (기원전 108)
f. 고조선의 사회
지배층과 피지배층 ⇒ 정치와 군사 당담
법을 만들어 사회 질서 유지 ⇒ 사유 재산 인정, 노비 존재 신분제 사회
3. 여러 나라의 성장
a. 철기의 보급과 사회 변화
한반도 만주 지역 철기 문화 보급
철기 → 농기구로써 적합 ⇒ 대농사혁명
철기를 Get한 강한 힘을 가진 집단의 국가 형성 ⇒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의 설립
직사각형 지상 가옥으로 주거지 형태 변경
널무덤, 독무덤
b. 부여의 발전
씅화강 주변 발전
왕 아래 마가, 우가, 구가, 저가, 대사자, 사자등 관리 존재
제천 행사 | 매년 12월 영고
죄수를 풀어줌
왕이 죽음 → 노비, 겨묻거리와 함께 순장
c. 고구려의 발전
주몽이 압록강 근처 건국
무예를 중시,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함
서옥제 혼인 풍습
제천 행사 | 10월 동맹
d. 옥저의 발전
한반도 북부 동해안 건국
민며느리제 혼인 풍습
가족 공동 묘 사용
e. 동예의 발전
강원도 동해안 위치
호랑이를 신으로
다른 마을을 침범하면 노비, 소, 말, 등으로 배상하는 책화 풍습
제천 행사 | 10월 무천
f. 삼한
여러 소국들이 연합 (마한, 변한, 진한)
제사장 천군이 종교 주관
소도라는 신성한 지역에서는 죄인을 잡지 못함
제천 행사 | 5월, 10월, 추수를 마친 후
4. 삼국과 가야의 성장
a. 고구려의 성장
부여에서 내려온 주몽
졸본 지역에 고구려 세움 (기원전 37)
정복활동 이후의 결과
이후 국내성으로 도읍 이전
자치적 성격이던 5부를 행정적 성격으로 개편
왕권을 부자 상속으로 변경
중앙 집권 체제 마련
b. 고구려의 전성기
4세기, 중국 군현 세력을 몰아냄
대동각 유역으로 영토를 넓힘
소수림왕 → 외부의 공격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 체제 정비
소수림왕의 국가 체제 정비
중국에서 불교를 받아들임
태학을 세워 인재를 양성
율령을 반포해 통치 조직을 정비
⇒ 중앙 집권 체제 강화
c. 백제의 건국과 성장
고구려 계통 유이민 세력이 한강 유역 세력과 연합하여 백제 건국 (기원전 18)
3세기 중엽 | 고이왕
통치 조직 정비
중앙 집권 체제 기틀 마련
좌평을 비롯한 관등제 정리
묵지국 병함 ⇒ 한반도 중부 지방 확보
4세기 | 근초고왕
전성기 맞이
남쪽으로 남해안 까지 진출
가야 여러 나라에 영향력 행사
중국 동진과 외교 ⇒ 선진 문물을 받아드림
이후, 침류왕 ⇒ 불교를 받아드림 ⇒ 중앙 집권 체제 뒷받침
d. 신라의 건국과 성장
사로국에서 고조선 멸망 이후 경주지역에서 세움 (기원전 57)
초기 왕권 확립 실패 ⇒ 박씨, 석씨, 김씨가 돌아가며 왕위에 오름
4세기 후반 | 내물왕
중앙 집권 체제를 갖춤
낙동강 동쪽 지역 차지
김씨의 왕위 세습 확립
왕의 칭호 마립간으로 변경
고구려의 도움으로 왜를 격퇴
e. 가야의 성립과 금관가야의 발전
낙동각 유역 변한 지역 여러 연맹
농업과 발전된 철기 문화바탕 성장
금관가야가 문맹을 이끔
금관가야의 쇠퇴
4세기 초 세력이 약화
낙랑이 소멸 ⇒ 선진 문물의 보급 실패 ⇒ 결속력 약해짐
신라를 공격하나 실패후 고령의 대가야로 주도권 이동
5. 삼국의 경쟁과 발전
a. 고구려 영토 확장
4세기 말 | 광개토 대왕
백제 공격 → 한강 이북 지역 차지
왜군 격퇴
만주지역 대부분 차지
영락이라는 연호를 사용
b. 한강 유역을 차지한 고구려
장수왕
중국의 분열을 이용해 안정적인 외교 정책
수도를 평양으로 이전
남진 정책 시행
백제를 공격 ⇒ 한성을 함력, 한강 유역 차지
c. 백제의 위기
5세기 무렵 ⇒ 남진 정책으로 위기
신라와 동맹 (나제 동맹), 북위에 도움 요청 ⇒ 실패
장수왕의 공격으로 도읍을 웅진(공주)로 이전 (475)
5세기 무렵 | 동성왕
신라와 혼인 관계를 맺어 나제 동맹 견고히함
d. 백제의 증흥
6세기 초 | 무령왕
지방에 대한 통치 강화
양과 교류하여 문화 발전, 국력 회복
성왕
사비(부여)로 도읍 이전
남부여로 이름 변경
불교를 적극적으로 장려
고구려가 혼란한 틈을 타 한강 다시 차지
e. 신라의 발전
6세기 무렵 | 지증왕
나라이름 신라로 정함
‘왕’ 이라는 칭호 사용
우산국(울릉도)를 복속
법흥왕
율령 반포
관등제, 골품제 정비
불교를 공인
건원 이라는 연호 사용
낙동강으로 진출해 금관가야 병합.
6세기 중반 | 진흥왕
화랑도를 국가적 조직으로 변경
황룡사 건립 → 왕실의 안녕
고령 대가야 정복
함흥평야 일대 진출
f. 대가야의 발전과 가야 연맹의 멸망
5세기 후반 대가야, 가야 연맹 주도
가야 연맹은 소국들이 정치권력을 유지했기에 힘을 모으지 못해 위축
이후 금관가야 법흥왕 멸망 (532), 대가야 신라 병합 (562)
6. 삼국의 통치 체제 정비
영토 확장
튼튼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정복 전쟁
왕위 세습
한 집안에서 계승
불교 수용
집단 통일, 왕실 권위 상승
율령 반포
왕 중심 통치 체제 형성
고구려 | 백제 | 신라 | |
귀족 회의 | 제가 회의 | 정사암 회의 | 회백 회의 |
행정 구역 | 수도 지방 각각 5부
지방관 파견 | 수도 5부, 지방 5방
지방관 파견 | 중앙 6부, 지방 5주
지방관 파견 |
관등제 | 수상인 중심 10여 관등 | 수상인 상좌평, 16 관등제 | 수상인 상대등, 17 관등제 |
7. 삼국의 종교와 학문
a. 불교의 수용
삼국에서 불교를 받아드려 사상적 통합을 이룸
‘왕은 곧 부처’ 라는 사상을 왕의 권력의 뒷받침 내용으로 사용
국가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사원과 탑을 많이 만듬
불교와 함께 중국과 서역의 문물이 들어와 문화발전 이바지
b. 불교 예술의 발달
사원과 불상, 석탑등 불교 예술이 발전
신라 진흥왕 황룡사, 백제 무왕 미륵사가 대표적
우리나라에 들어와 점차 석탑으로 바뀜
점차 삼국 각각의 형태로 변화함
미륵보살상이 많이 많들어짐
c. 도교의 수용
중국에서 도교가 전래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신선 사상, 산천 숭배 → 귀족 중심으로 유행
고구려 고분 벽화 → 도교 관련된 내용
백제 → 신선 사상이 유행, 금동 대항로
d. 학문과 과학 기술의 발달
한자가 사용, 유학이 발전
고구려 → 태학 건설, 경전 가르침
백제 → 오경박사 건설, 경전 가르침
신라 → 한자의 뜻과 소리를 본뜬 이두 언어 사용.
삼국 → 역사서 편천, 농업 발전
왕의 권위 높이기 → 천문, 고구려 | 별자리 천문도, 신라 | 첨성대
8. 삼국의 고분 문화와 의식주
a. 삼국의 고분
고구려 초기 무덤 | 돌을 쌓아 올린 돌무지무덤 → 굴식 돌방무덤으로 변화, 벽에 다양한 벽화
백제
신라 | 돌무지 덧널무덤 천마총, 황남대총, 고구려 백제의 영향 → 굴식 돌방무덤
b. 고분 벽화
굴식 돌방 무덤 → 벽면, 천장에 벽화
생활모습 파악 가능, 인물 초상화, 생활 풍속
후기 도교 영향으로 사신도
c. 삼국 시대의 의식주
의
일반 평민 | 실로 짠 베옷
귀족 | 비단, 명주실
모양 | 남녀 모두 긴 저고리, 바지
식
조, 보리, 기장을 주로 섭취
6세기 이후 벼 농사 확대 → 쌀 늘음
토기를 이용해 음식 조리, 시루를 이용해 곡식 쪄먹기
주
평민 | 귀틀집, 초가집
귀족 | 기와집, 곡식 및 수레를 보관하는 창고
9. 삼국 및 가야의 문화 교류
a. 중국, 서역과의 문화 교류
고구려 → 중국과 가까움 ⇒ 중국 북조의 문화, 바다 ⇒ 남조와 교류
백제 → 중국 동진, 남조와 교류
신라 → 초기 고구려를 통해 수용, 한강 유역 차지 후 직접 교류
가야 → 바다를 통해 중국 , 왜와 교류
b. 일본과의 문화 교류
삼국, 가야 → 중국과 서역의 문화를 일본에 전파
일본과 가장 많이 교류한 백제 → 한문, 유고 경전, 불교
고구려 → 종이, 먹의 제조법
신라 → 배 만드는 기술, 둑 쌓는 기술
가야 → 철로 만든 갑옷, 토기 제작 기술
10. 고구려와 수 당 전쟁
a. 동아시아 국제 정세 변화
6세기 말 중국을 통일 | 아시아 정세에 변화
고구려 북방의 돌궐과 연함
고구려, 백제의 침입을 받는 신라 → 수에 도움 요청, 신라 적대 관계 백제는 고구려, 왜와 손을 잡음
고구려, 백제, 돌궐, 왜 vs 신라, 수-당 세립이 대립
b. 고구려와 수의 전쟁
수, 세력을 넓이며 주변 국가 복속을 요구
고구려 이를 거절, 수를 공격 → 수는 30만 군대로 고구려를 침공 ⇒ 고구려의 저항, 홍수, 전염병으로 성과 없이 돌아옴
양제 113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공격, 그러나 실패.
우중문에게 30만 별등대를 주어 평양성을 공격하도록 하였으나 살수에서 크게 실패 (살수대첩, 612)
c. 고구려와 당의 전쟁
당이 건설되자 고구려는 당과 친선 관계를 유지
당 태종이 나오자 고구려를 압박해 천리장성을 쌓음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강경한 정책을 펼침.
당 태종 연개소문의 정변을 구실로 고구려 침임
안시성을 포위해 수십 일에 걸쳐 공격하나 실패 (안시성 전투, 645)
이후 고구려 당의 침입을 막아 국제적 위상을 높이나, 계속된 전쟁으로 고구려의 국력은 점차 약화
11. 삼국 통일 전쟁
a. 신라와 당의 연합
백제 의자왕 신라를 공격하기 위해 대야성등 여러 성을 빼앗고, 당으로 가는 교통로를 끊음
위기의 신라는 김춘추를 고구려로 보내 도움을 요청 → 당이 대동각 이북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신라의 제안을 받아들임 ⇒ 나당 연합
b. 백제의 멸명과 부흥 운동
백제 의자왕 귀족 세력을 누르고 왕권 강화로 개혁 추진, 그러나 잦은 전쟁과 귀족의 반발로 정치가 혼란
당의 소정방, 신라 김유신의 나당 연합군이 백제 사비성 공격
국력이 약한 백제, 기벌포에서 패함, 계백 결사대 황산벌 에서 패배 (황산벌 전투) ⇒ 사비성 함락, 의자왕 항복 ⇒ 백제 멸망 (660)
이후 백제 부흥 운동, 그러나 지배층 내분 백강(금강 하구) 전투의 패배로 실패.
c. 고구려의 멸망과 부흥 운동
백제 멸망 후 나당은 고구려 공격. 연개소문 중심으로 이를 물리치나 국력 약화
연개소문 사망 후 권력 다툼이 일어나 정치 혼란
이러한 상황에서 나당 연합군으 공격, 수도 평양성 함락으로 고구려 멸망(668)
검모잠, 고연무는 안승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 한때 평양성을 회복하기도 함.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는 당의 불만을 품어 신라의 도움을 받기도함.
그러나 고구려 부흥 운동은 지배층의 분열로 힘이 약해지고 실패.
12. 신라의 삼국 통일과 발해의 성립
a. 신라와 당의 전쟁
백제 고구려 멸망 후 당은 백제와 고구려 중심지에 웅진도둑부와 안동도호부를 설치
신라 땅에도 계림도둑부를 설치해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함.
⇒ 당을 몰아내기 위해 고구려 부흥 운동을 지원, 백제 유민과 힘을 합쳐 당에 맞서 싸움
⇒ 신라는 매소성에서 당의 육군을 물리침, 기벌포에서 당의 수군을 격파.
⇒ 당이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옮겨 한반도에서 물러남
⇒ 신라는 삼국 통일을 이룸(676)
b. 신라 삼국 통일의 의의
신라는 고구려 백제 유민과 함깨 당을 몰아내는 자주 의식을 보임
통일 후 민족 융합 정책을 실시해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를 수용해 새로운 민족 문화를 발전시키는 기반을 마련함
c. 발해의 건국
고구려 멸망후 요서 지방으로 끌려간 대조영은 당에 거란이 당에 반란을 일으킨 틈을 타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
대조영을 추격하는 당군을 물리치고 만주 동부 지역에 발해 건국 (698)
신라의 북쪽의 발해가 공존하는 남북국의 형세를 이룸.
발해는 고구려 유민이 중심이 되었기에 고구려 계승 의식이 강하였음.